오한숙희의 얘들아 책과 놀자
경상남도 진해 기적의 도서관에 갔을 때 한 어머니가 손을 들고 물었다.
“우리 애는 책을 건성으로 읽는 거 같아요. 초등학생인데, 자기 누나가 그 두꺼운 책을 다 읽었냐고 하니까 다 읽었다고 하는 거예요. 물어보니까 중간중간 자기가 재밌는 부분만 읽고는 다 읽었다고 한 거였어요. 천연덕스럽게….”
그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나는, 아들의 치부를 마지못해 공개하는 안타까운 모성을 읽었으나 끝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았다. 왜냐. 그것은 곧 나의, 어린 시절도 아니고 지금, 현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기특해요? 그 두꺼운 책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소화했잖아요. 그 애는 평생 책과 친하게 지낼 거예요. 책과 사귀는 방법을 알잖아요. 대부분의 애들은 책의 두께에 겁먹고 손조차 대지 않는단 말이죠. 그런데 그 애는 그 안에서 재미있는 부분을 찾아냈고 야금야금 읽었어요. 나중에 좀더 철이 들고 이해력이 생기면 또 다른 부분이 재밌어질 것이고 그러다 보면 그 책을 다 읽게 되겠지요. 억지로 고통스럽게 다 읽었다 쳐 보세요. 다시는 두꺼운 책 근처에도 안 갈걸요. 어쩌면 책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십리만리 달아나고 싶을지도 모르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그 어머니의 얼굴이 꽃처럼 환하게 피는 것을 나는 보았다.(이럴 때 내가 책을 10권 냈고 사단법인 ‘책읽는 사회’에서 나를 문학순회대사로 임명하여 공신력을 갖게 해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어린 시절, 우리 아버지는 두꺼운 책들을 권하실 땐 읽기 싫으면 베고만 자라고 하셨다. 자려고 누웠는데 금방 잠이 안 오면 베개 삼은 책을 뒤적거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었다. 껌의 단물처럼 재미있는 부분만 쏙 빨아먹고 나면 탁 소리 나게 책을 덮어 베고 잤지만 읽은 부분은 말랑한 어린 뇌에 쉽게 새겨졌다. ‘다 읽긴 했는데 도대체 무슨 내용이었는지 통 모르겠는 것보다 그 책에서 한 구절이라도 기억에 남고 가슴에 새겼다면 그것이 독서의 생명’이라는 아버지 말씀은 이런 날림독서에 인증서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이런 조각 독서의 결실들이 어느 때고 글이나 말에서 의도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레 활용된다는 것은 내 나름의 인증서였다.
이름을 붙이자면 이건 밀고당기기 독서법이다. 내 선배는 목차부터 읽는다. 이른바 모범생 독서법. 누구는 애벌빨래하듯 속독으로 한번 쫙 읽고 본세탁처럼 꼼꼼히 한번 더 읽는다. 그림을 그리며 딸애도 거든다. ‘나는 사실, 맨 처음에 맨 뒤를 살짝 본 다음에 처음부터 읽거든.’(답안지 커닝(치팅)형 독서법)
누구나 자기 나름의 독특한 책읽기의 방식이 있다. 독서방법에 왕도나 정도는 없다. 독서란 책이라는 ‘존재’에 말 걸기 같은 것이므로. (진해에 사는 고 녀석, 생각할수록 깜찍하다.)
여성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