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에 읽는 수필
쑥을 캐면서
[2006-03-21 16:17]
쑥을 캐러 나섰다. 비오는 날 골프 칠 때 쓰는 커다란 우산을 받쳐들고, 인도의 여자들이 차드르(chadar)로 얼굴을 가리 듯 스카프로 감싸고 손에는 면장갑을 꼈다. 햇빛에만 나갔다가 오면 온몸에 두르러기가 치솟기 때문에 딴에는 완전 무장을 한 것이다. 이 따뜻한 봄날에 한겨울 김치독처럼 싸매고 나서는 꼴이 가관인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본다. 쑥 캐러 간다는 내 말에, 그렇게 하면서까지 가느냐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그들이 내 심정을 어찌 알랴. 열녀는 못되어도 할 수 있는데까지는 해보겠다고 양지바른 들길을 찾아 나섰다.
그저께 저녁이다. 고향에 다녀온 남편이 두툼한 보퉁이를 내밀었다. 펴보니 올망졸망 여러 개의 봉지가 들어 있다. 보리밥을 삭혀서 만든 식음장, 고추장에 넣은 더덕 장아찌, 호박떡, 쑥떡, 들깨, 흑임자 등이 갖추갖추 챙겨져 있다. 큰 형님(시누이)이 싸보낸 것이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남편은 큰 누님에게서 모성을 느끼는지 좀 울적한 일이 있으면 훌쩍 고향을 다녀온다. 우리 집안 일도 나보다 그 분과 더 많이 의논하는 편이다. 젊을 때는 그것 때문에 부부 싸움을 자주 했다. 나이 들면서 나도 동생댁네를 맞고 시누이 입장이 되니까 남편과 형님을 이해하게 된다.
내 자신은 예전보다 훨씬 너그러워졌다고 믿는데 남편의 시각은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별일 아닌 것도 그 형님과 연관된 것은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한다. 내가 자기 누님한테 항상 옹졸하게 군다고만 생각하는 것 같아 섭섭힐 때가 많다. 누님이 보낸 보퉁이를 정리하다가 살짝 쉰내가 나는 듯한 쑥떡덩어리를 들고 남편을 쳐다봤다. 그는 대뜸,
“또 버릴려고? 나는 우리 집 쑥떡보다 이게 훨씬 더 맛있더라.”
는 것이다.사실, 우리 집 냉동실에도 아침 식사 대용의 쑥떡이 들어 있다. 그것은 방앗간에다 주문해서 만든 말랑말랑한 쑥인절미이다. 조그맣게 가지런히 썰어다 준 그것을 여나믄 개씩 두 줄로 은박지에 싸서 얼려 두었다가 아침에 꺼내 먹으면 한끼 식사가 된다.
그러나 남편은 그걸 먹을 때마다 무슨 쑥떡이 이래 이건 꼭 골패쪽같이 생겨서 원 하며 타박을 한다. 쑥떡은 손맛과 정성이 어우러진 구수한 인정으로 먹는 것인데 내가 내놓는 떡은 너무 작고 너무 매끈한 데다 혀끝에서 녹아버려서 떡 본래의 맛을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다.그러면서 어릴 적, 햇쑥이 돋을 즈음에 묵은 쑥을 푹 삶아서 절구에다 치고 손으로 주물러서 만들어 먹던, 못생겼지만 푸짐하고 넉넉하던 쑥떡 이야기를 고장난 테잎처럼 하고 또 한다.
그는 세련된 기성품의 식품을 싫어한다. 반면에 나는 눈으로 벌써 맛이 느껴져 오는 현대식의 맛깔스러운 것을 좋아한다. 남편은 나에 대한 불만과 잃어버린 유년의 향수를 형님이 싸 준 떡에서 풀려는 듯 볼멘 소리로,
“내가 저녁 대신 그 떡을 먹을 테니 가져오시오”
라고 했다. 실랑이하는 게 귀찮아서 아무 말 않고 그냥 담아다 놓았다. 그는 두 볼이 미어질 듯이 맛있게 먹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이튿날 새벽부터 화장실을 들락거리기 시작하더니 이틀째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배를 움켜쥐고 다닌다. 두 눈이 퀭한 남편을 쳐다보면 자꾸만 양심이 찔린다.
오늘 아침에도 빈속으로 그냥 나서며 쑥 즙을 마시고 싶다고 했다. 평소 같으면 하필 그걸 찾느냐고 핀잔을 주었으련만 아무 말도 못하고 쑥을 캐러 나서기로 했다. 자외선에 민감한 체질이라 어릴 때부터 소풍이나 운동회는 물론이고 등산이나 테니스와 같은 야외 스포츠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형편이지만 중무장을 하고 나섰다.
우리 집은 아직 겨울 속에 머물고 있는데 들판에는 봄이 넘쳐나고 있다. 쑥을 캐는 동안 어느덧 속상했던 기분도 사라지고 혼자만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졌다. 봄내음과 새 소리에 취하여 왜 쑥을 캐는 지도 잊어 버렸다.